*1967년 ‘영화 예술’(Искусство кино)잡지에 최초 게재된 이후, 1986년 독일어로 첫 출판. 1991년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하여 『봉인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첫 발간. 이후 2021년 러시아 원서를 통해 『시간의 각인』으로 재발간.
선정과 글. 길민형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묵직함에 압도될 때가 있다. 그 압도감이 『시간의 각인』을 읽으며 받은 인상이다. 『시간의 각인』은 <이반의 어린시절>부터 <희생>까지 여러 편을 연출하며 영화사에 중요한 감독으로서 자리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쓴 책으로,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영화 철학은 물론 영화 뒤편에 있던 제작 비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롱테이크와 시적 논리로 전개되는 세계, 자칫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그의 세계를 알아가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예술가는 항상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가보다 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없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재능과 소명에 매여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재능 기여와 민중 봉사에 묶여있는 몸이다. p.214
타르콥스키의 생각을 읽고 있으면 결국 그의 초점은 ‘인간’에게로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시간의 각인』을 읽으면서 러시아 문학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러시아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문체에만 기인한 것이 아닌 그가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적인 면모도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인 자신을 ‘민중 봉사에 묶여 있는 몸’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은 인간을 향하는 예술가로서의 의무를 엿볼 수 있으며, 마치 실천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간의 각인』은 단순히 영화 미학에 대한 예술관을 전하는 매개에 그치는 서적이 아니다. 『시간의 각인』은 타르콥스키가 예술가로서 대중/인간에게 행해야 하는 실천적 행위를, 영화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쪽이든 그의 행위는 언제나 ‘민중’을 향해 실천되는 것인 셈이다. 우리는 『시간의 각인』에 대해 타르콥스키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치열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