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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및 GV

오!재미동의 상영전을 통해 여러 분과 만났던 작품들의 리뷰가 모아져 있습니다.
GV에는 보통 감독님들이 오십니다. 감독과 관객이 소규모 극장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들, 시간을 담아둔 공간 입니다.
  • 무산일기
  • 드라마  |  2010  |  0분  |  한국
  • 감독 박정범
  • 등급 15세
  • 상영일 : 2011.07.01~2011.07.31

작품리뷰

 

내 고향은 무산입니다. 그리고 친구가 없습니다.

- <무산일기(2010, 박정범 연출)>

거칠다고 하기에도 뭣하고, 바보 같다고 하기에도 뭣한 인생이다. 똑똑한 척 해야 하고 잘 사는 척 해야, 적어도 겉으로는, 서럽지 않을 수 있는 곳이다. 탈북자 전승철씨는 바보 같은 외양에다 의식주의 질이 거칠기만 하다. 그러나 그걸 지적하고 비웃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지 그것은 지적이고 사려 깊은 인간으로 살고 싶은 허영심이다. 멀리서 보며 측은지심을 느끼는데 만족하고 가까이 친구하고 싶어지지는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승철씨는 친구가 없다. 일을 주고 이웃이 되어 줄 사람들은 그를 꺼리고, 동류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반목하게 되는 지경이다.

<무산일기>는 탈북자들이 불쌍하고 험하게 사니까 도와주자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말 그대로 ‘도와주는’ 일은 멀리서도 고고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가까이서 바라봐 주는 ‘친구’이다. <무산일기>에서 승철씨가 단란주점 도우미들과 찬송가를 시끌벅적하게 부르고 있는 광경을 본 숙영씨가 화를 내며 교회도 나오지 말고 일도 그만두라고 했을 때, 자신이 단란주점을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숙영씨는 승철씨가 도우미들과 노래하는 일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며 단호하게 판정을 내린다. 남몰래 숙영씨를 연모하던 승철씨는 어안이 벙벙하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노래 부를 기회가 없던 그는 그게 왜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것은 숙영씨의 판단일 뿐이지만 승철씨는 그 판단에 생존을 맡겨야 한다.

교회의 고백 모임은 승철씨로 하여금 “내 고향은 무산이며 난 두 명을 죽였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듣고 숙영씨는 미안하다며 자신이 단란주점을 하는 것이나 승철씨가 살인을 한 것은 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승철씨를 성가대로 친절히 인도하고 성의껏 교회생활을 도와준다. 이처럼 승철씨에게 이 곳은 자기 치부를 다 드러내야만 측은지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숙영씨는 자신이 승철씨와 비슷한 처지라고 느끼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는 교회에서 단란주점 같은 하급 유흥문화와는 동떨어진 척하며 살 수 있지만, 승철씨는 절대 어떤 척도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125-라는 주민등록번호가 그렇고, 판정을 받으며 살자니 죽을 노릇이고, 동정을 얻으며 살자니 바닥의 자존심까지 버려야 한다.

숙영씨의 마음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승철씨가 살기 편해질까? 다시 숙영씨의 단란주점에서 일을 하게 된 승철씨는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자르고 옷도 말끔하게 사 입었다. 단련되고 적응된 듯 보인다. 그러나 그가 아끼던 백구가 길바닥에 죽어 자빠져 있을 때, 승철씨는 앞으로도 여전히 친구 없고 거칠고 바보 같이 살아가야 할 것임을 (관객도) 알게 된다.

현기증이 나는 영화다. 심리적으로 압박해 들어오는 화면 위의 살풍경한 내용이 그렇고, 집요하게 승철씨의 뒷덜미를 쫓아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또한 그렇다. (이런 류의 “뒷덜미 카메라”를 벨기에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에서도 볼 수 있다. 뒷덜미를 따라다니다 보면 그의 숨 막히는 삶의 시간에 절로 함께 숨이 막힌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집요하게 뒷덜미를 쫓아가다가도 어느 순간 붙박힌 듯이 한 자리에서 멀찍이 건네다 보는 카메라가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카메라 움직임은 인물과의 거리감을 조절하며 관찰자가 언제나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백구가 죽은 장면처럼 그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에 멈칫하며 뒤로 빠지는 우리의 시선은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 굴면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투사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승철씨의 인생에 먹먹하기보다 내 양가적인 감정에 화가 난다.

- 글 : 이현정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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