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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 김리아 (시각예술인, 오!재미동 갤러리 전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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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느린 발걸음이 머물던 문화공간, 오!재미동 -초고령 사회와 오!재미동의 상실
오!재미동과의 인연은 2017년, 오!재미동 갤러리 공모를 통해 개인전을 열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매일 갤러리에 나가 방문객들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미술 공간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연령층의 관람객들이 줄지어 찾아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걸음 폭이 10센티도 채 안 되는 어르신 한 분이 있었어요. 작은 갤러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도 몇 분이 걸렸지만, 그분의 시선은 느리고 정확하게 그림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오!재미동 갤러리는 개찰구로 가는 길목, 오!재미동 아카이브와 소극장 사이에 자리해 있습니다. 환승을 하거나 출구를 찾는 시민들이 지나는 길에 ‘슬쩍’ 들어와 볼 수 있는, 그 열린 위치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었죠. 전시가 바뀔 때마다 방명록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남았습니다. 연령층도, 국적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방문하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오!재미동은 특별한 목적지를 찾아간 곳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서 잠시 머물 수 있는 쉼터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예술은 거창한 체험이 아니라, 하루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하는 작은 호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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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용한 환대 -아카이브와 문화공간
“나도…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아카이브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이용자나 방문자는 대부분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개찰구에 가장 가까운 오!재미동 아카이브에는 다섯 개의 작은 감상 부스가 있었고, 그 안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조용하고 따뜻했습니다. 평일 오전, 멀쑥한 차림의 어르신들이 편안히 이곳을 이용하셨습니다. 2024년까지의 이용자료에 따르면, 80대 이상의 이용률이 전체의 20%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습니다. 이는 다른 문화시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통계입니다. 노년층은 노화로 인한 신체적·인지적 제약 때문에 문화 참여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재미동은 이 장벽을 낮췄습니다. 출입이 편리했고, 이용이 어렵지 않았고, 영화와 시설에 전문적인 안내자가 늘 친절히 도움을 주었습니다. 누구나 “내가 환영받는 공간”이 드는 마음 편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물리적 접근성이 아니라 심리적 접근성, 즉 문화적 존엄을 회복시키는 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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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라지는 공간이 남긴 질문 -좋은 아카이브에 대하여
오!재미동 아카이브에는 약 2,500여 점의 DVD와 2,600권의 영화 관련 서적이 있습니다. 상업적 유통망 밖에 있는 독립·단편영화, 그리고 잊혀 가는 과거의 작품들이 이곳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좋은 아카이브는 단순히 자료를 보존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잊히지 않아야 할 시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장소이자, 사회적 기억을 공동으로 지키는 공적 기반입니다.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취향, 한 세대의 감정, 한 도시의 기억이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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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의 상실은 단순히 한 기관의 종료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지켜온, ‘모두에게 열린 문화의 문’을 하나 닫는 일입니다. 그 문턱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예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초고령 사회로 가는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오!재미동이 필요합니다. 예술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닿아야 하는 공공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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