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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에 다녀왔습니다. 영화를 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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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 송경원 (씨네21 편집장, 영화평론가, 오!재미동 ‘영화구경꾼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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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간에 쌓입니다.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카페가 문을 닫고 사라졌을 때 꽤 오랫동안 허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간은 때때로 그 자체로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곳은 특별한 장소로 거듭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오래된 장소를 보존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장소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대체할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이 축적될 때 그곳은 고스란히 역사로 거듭납니다. 역사는 단지 종이 위에 기록된 문자가 아닙니다. 종이, 디지털, 심지어 담벼락이라도 기억은 기록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 공간에 남아버린 기록을 다시 꺼내어 볼 때 기록은 현재의 기억으로 거듭납니다.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행위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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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란 무엇일까요. 해묵은 질문을 다시 꺼내봅니다. 시대마다, 상황마다 그 개념과 범주는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형식, 언어, 상영시간, 화면비 등 물리적 조건은 계속 변화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조건은 다름 아닌 극장입니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만남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영화 보고 왔어.” 어림짐작에도 수천 번은 건넸을 이 습관 같은 대답이 근래 전혀 다른 두께로 다가옵니다. 예전엔 영화를 보고 오면 그 영화에 대한 것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가 주인공이고 관람은 당연한 기본값이었습니다. 영화는 보는 매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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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본 내용만큼이나 점점 ‘보았다’는 행위 자체가 기억에 남습니다.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못지않게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그날의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그 영화와 만난 그날, 극장엔 몇 명이 있었는지, 날씨는 추웠는지 더웠는지, 어떤 기분으로 극장에 들어갔는지에 따라 영화와 얽힌(혹은 영화로부터 물려받은) 기억마저 달라집니다. 몇 년 전부터 저에게 영화는, 대상으로서의 ‘명사’보다는 행위로서의 ‘동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정 영화의 관람을 넘어 ‘영화라는 행위’를 한다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상영 일정 맞춰 영화를 고르는 과정, 스케줄 조정 후 영화관까지 가는 시간, 극장을 나서며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경험까지. 영화와 연결된 모든 체험이 곧 영화(의 일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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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미동에서 영화를 놓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출근 도장 찍듯이 이어온 만남의 시간을 횟수로 세어 보니 어느덧 80번이 되었습니다. ‘그냥’은 힘이 셉니다. 일일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힘을 주어 진행하는 것들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길이 되고, 쌓이고 보니 의미가 되는 것들이 더 소중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되돌아본다’는 건 그런 의미겠지요. ‘보는 것’에서 ‘하는 중’으로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나니, 스크린의 다양한 존재 형태와 가능성이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오!재미동에는 그런 집단 경험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이 쉬이 사라지는 걸 용납하기 힘듭니다. 이 공간을 매개로 이 기억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한국 사회는 쓸모와 편의를 기준으로 지나치게 쉽게 이 흔적들을, 거점들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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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쓰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대체로 애정을 가진 어떤 것에 집중하고 애쓰는 상태를 드러낼 때 꺼내는 말인데 긍정보단 부정적인 상황에 곧잘 쓰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마음을 쓴다’는 표현보다는 ‘마음이 쓰인다’는 표현이 더 와닿습니다. 때론 의지 바깥에서 작동하는 것들이 우리를 있어야 할 자리로 이끌기도 하니까요. 오!재미동이 행정편의주의와 많은 이들의 무관심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마음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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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마음을 쓴다고 딱히 해결되는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말하는 현실과 세계 정세를 논하는 거창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오!재미동을 기억해야 한다는 호소는 미미할 수밖에 없을 거란 회의감도 듭니다. 나는 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고, 바쁜 사람들은 이 고민을 들어줄 처지가 못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고민은 공유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오!재미동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마음을 써준 사람들의 온기가 이 기억을 유의미한 형태로 이어갈 수 있는 성냥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영화를 나눈다는 건 그런 겁니다. 영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눴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연결되어 있다면 내일로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어떤 형태가 되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더라도, 오늘의 이곳을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의 기록지가 되어 어제의 오!재미동이 걸어온 길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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