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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장병기
<여름이 지나가면>, <미스터장>, <할머니의 외출>, <맥북이면 다 되지요>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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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을 연출한 감독 장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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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 관련 전공자가 아니고 씨네필도 아닙니다. 널리 인정받은 영화들을 뒤늦게 보거나, 아직도 안 본 영화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만의 숨겨 둔 걸작들을 고를 만큼의 데이터가 없어서 흔히 알려진 우주명작들만 뽑게 되었네요. 영화를 좀 보신다는 분들께는 좀 시시한 리스트일까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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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대체로 궁색한 결과이지만 과정에서 멋을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슬픈 종’이라는 이상한 부제를 붙였습니다. 본문도 실패한 것 같지만 멋진 표현들로 채워보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때문에 읽다가 힘이 드신 분은 그 부분을 체크해놓고 잠시 쉬었다가 건너뛰어서 봐주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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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드라마 | 프랑스 외 | 125분 | 2012
감독 미하엘 하네케
출연 장루이 트랭티냥, 에마뉘엘 리바
Archive No.I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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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점은 2018년입니다. 당시에 제가 어떤 영화를 하나 만들고 나서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을 했던 때입니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 시기에 극장에서 <해피엔드>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멀리서 깜빡거리는 빛을 본 것 같았어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가 등대를 만난 것처럼요. 진부한 표현이라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그랬습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몰라도 방향을 제시 받으면 일단 갈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하네케 감독님의 여러 영화 중에 어떤 것을 추천할까 고민했습니다. <아무르>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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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가 안정된 노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교계의 존경을 받는 부부에게도 병마가 찾아옵니다. 어느 날 안느의 몸이 점점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그 이야기가 맞습니다. 제게도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안느의 병문안 오는 딸의 얼굴을 압니다. 안느를 존경하는 제자의 얼굴도 압니다. 그러나 조르주와 안느의 얼굴은 제가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왜 저는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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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저는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 고향집을 갑니다. 그곳을 한시바삐 떠나기 위한 핑계를 준비하고요. 핑계에 디테일까지는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되묻더라도 내가 돌아갈 대단한 세계에서는 한없이 소박한 수준의 물음일 것입니다. 내가 떠난 다음, 부모님의 식사는 어떤 것일까요? 일단 저의 몫이었던 한우로 만든 LA갈비가 있고, 남은 제사 음식이 있고, 분명히 트로트 방송을 틀어놓을 겁니다. 그런데 두 분의 얼굴은 모르겠네요. 지금 굉장히 진심어린 반성을 하고 있지만, 막상 그날이 오면 저는 늘 그랬듯 한시바삐 떠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안느의 딸, 이자벨 위페르의 눈물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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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이 나고 남는 것은 어떤 인물이 아니라 ‘인간상’입니다. 그리고 관객은 이 상에 동의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동의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게 제가 2018년에 봤던 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고약하다고 말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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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드라마 | 이란 | 123분 | 2011
감독 아스가르 파르하디
출연 바박 카리미, 사라 바밧
Archive No.I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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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님의 영화를 떠올리면 두통을 앓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제가 30년 후에 보더라도 지금 느끼는 감상과 같을 것이고,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이 보더라도 저와 같은 감상을 갖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용이 될 것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본질이 아니더라도 그만큼 중요한 것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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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사실에 대한 공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부부가 이혼절차를 밟게 되면 크고 작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깁니다. 극 중 부부인, 씨민과 나데르는 이혼을 준비 중입니다. 자녀의 교육, 치매 아버지의 생활, 가사 일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남편인 나데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간병인을 고용합니다. 간병인인 라지에는 깊은 신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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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타인은 나의 기대에 맞춰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요. 누구나 사정이 있고, 모두 자신의 옳은 판단을 믿고 행동합니다. 어느 날, 나데르는 조금 일찍 집에 오는데 침대에 팔이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발견합니다. 간병인은 집에 없습니다. 이 때부터는 지나 온 모든 사실에 의도가 있어야 되고, 불리했던 사실은 숨겨져야 합니다. 마치 이야기가 칼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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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사실공방을 따라가보면 어느새 사실 이상의 것들이 무너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혹시 평소에 사실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저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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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
드라마 | 미국 | 130분 | 2017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Archive No.I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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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과 평등한 관계일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사회적인 입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말입니다. 그 관계가 연인 사이라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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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맺어 온 몇몇의 관계들을 떠올려 보면 제가 권력에 얼마나 취약한 사람이었는지 느낍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가진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이미 가진 이 권력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과정은 재미있습니다. 그 반대는 재미있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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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조건의 두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됩니다. 둘 사이가 기울어져 있음이 금방 드러납니다. 가진 쪽은 늘 그래왔던 것이기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꽤 강적입니다. 평등을 위한 처방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피권력이 권력을 조절하는 그 만의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조절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장면은 제가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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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린 것 같습니다. 조심하려고 노력했는데 이 영화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경쾌함을 느끼는데 이미 본 영화를 한 번 더 볼 때는 실제로 들썩거리기도 합니다. 이 영화도 다섯 번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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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것처럼
드라마 | 프랑스, 일본 | 109분 | 2012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타카나시 린, 카세 료
Archive No.I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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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노년의 학자가 콜걸을 부릅니다. 이 노인은 꽤 저명한 학자인 것 같습니다. 콜걸은 인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입니다. 이 영화에는 몇 가지 사랑 같은 것이 나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성숙한 모습의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일단 보류하고. 미성숙한 그것들을 보는 저는, 위태로움과 긴장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놓지 못합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 너머를 아주 조금만 넘겨짚으면 메스꺼움이 느껴져 버립니다. 판단과 상상력에 족쇄를 채우고, 키아로스타미 감독님이 보여주는 단정한 화면을 잘 보게 됩니다. 대단한 감독님께 된통 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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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이 영화의 백미를 묻는다면 시종일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라고 답을 할 것 같습니다. 큰 사건이 나오지 않고도 이만큼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반가운 카세 료 배우의 절대 반갑지 않은 등장도 제가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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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까지 보고 나서 친구와 얘기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랑과 사랑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서 저는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할 얘기가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님의 유작이고, 도쿄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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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드라마 | 한국 | 90분 | 2009
감독 장률
출연 최건, 윤란
Archive No.K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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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리스트 중에 유일하게 제가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좋아했던 영화입니다. <여름이 지나가면>의 엔딩이 이 영화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자처하고 싶지만, 솔직히 많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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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은 북한의 최상단에서 중국과 국경을 가르는 강입니다. 그 강이 가르는 것은 땅뿐만 인 건 아닐 것입니다. 강을 도보로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이미 부서져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강 하나를 두고 민족과 체제가 다르다고 결정한 사람들은 이 마을과 아주 멀리 있을 겁니다. 두 곳 모두, 주민의 삶을 위한 제도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각자 체제의 칼끝만 바짝 별인 상태입니다. 창호가 살고 있는 연변의 마을은 도강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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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을에 사는 여러 사람들을 다방면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 그들의 밀입을 돕는 창호의 삼촌, 부서진 다리를 그리워하는 노모, 실어증에 걸린 채 다리는 그리는 순희, 술로 삶을 달래는 이웃, 경찰들, 축구를 하는 아이들. 그리고 배고픔에 종종 도강을 해서 넘어오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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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과 창호는 축구라는 놀이를 통해서 친구가 됩니다. 정확하게는 거래를 합니다. 정진은 배가 고프고, 창호는 정진의 실력이 필요합니다. 같이 시합에 나가자는 약속을 합니다. 정진은 사실 창호의 마을을 대표할 수 없을 겁니다. 강을 건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알겠습니까? 둘은 같은 언어를 쓰고, 생김새도 아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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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은 상당한 비극입니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얼굴의 아이가 폐가의 구석에 숨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도 도강을 한 새로운 아이인가 봅니다. 역사와 사회가 아무리 나누고 재단해도 삶에 대한 의지까지는 막을 수 없는 것이겠죠. 처음 본 아이의 몸은 너무 작습니다. 지금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집니다. 배고픔이란 목숨을 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떠올려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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